시 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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풍천임씨 부원군파(府院君派) 시조(始祖)의 휘(諱)는 자송(子松) 이시다.
고려사에 나타난 부원군의 사적
麗史府院君事蹟
충숙왕(忠肅王) 6년 서기 1319년 기미에 원윤(元尹) 관직명임 자송(任子松)을 원(元)나라에 보내어 공주(公主) 복국장공주(濮長公主) 의 죽음을 알렸다. 8년 신유에 동지 밀직사사(同知密直司事)로 삼았다.
11년(서기 1324년) 갑자에 충숙왕이 원나라로부터 돌아와 임 자송을 원량익찬공신(元亮翊贊功臣)의 호를 주고 아울러 첨의평리(僉議評理)에 임명하였으며 이 제헌(李齊賢)을 밀직(密直)으로 삼았다.
14년 정묘에 전교하기를 [간신(姦臣)이 왕위(王位)의 천동을 꾀하는 것을 시종하는 신하들이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절의를 다하여 보좌하였으니 그 공로는 기록할 만한 것이 있다.
첨의정승(僉議政丞) 윤 석(尹碩)과 서하군(西河君) 임자송(任子松) 등을 일등공신으로 삼는다고 하였다.
전에 병인년에 전교하기를 [난을 일으킨 적도들이 멋대로 도성(都城)에 호소하여 성(省)을 세워 내지(內地)와 비등하게 해주기를 청하였다.
이때 제신들이 심력(心力)을 같이하여 황제에 상주하여 혁파하므로 서 다시 나라를 창조하였으니 그 공공이 막대하다] 하고 찬성사(贊成事) 김 이(金怡) 등을 등록하여 공신으로 삼았다.
17년 (서기 1330년) 경오에 원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국새(國璽)를 가져가므로 서하군 임자송을 보내어 국새를 받들고 원나라로 갔다.
그해 四월에 임자송(任子松)을 찬성사(贊成事)로 삼았다.
충혜왕(忠惠王) 三년 (서기 1342년) 임오에 전교하기를 [적신(賊臣)이 난을 획책한 뒤에 남은 일당이 허무맹랑한 말을 날조해 모아서 난을 선동해 마지않았는데 시종하는 신하들이 시종 한 결같이 절의로 내 몸도 도왔으니 그 공이 막 대하다.
윤 석(尹碩). 임 자송(任子松) 등을 일등공신으로 삼노니 그들의 형상을 공신각 벽 위에 그리도록 하고 부모와 아내는 三 등급을 뛰어 봉작(封爵)게 할 것이며 아들 하나는 七 품에 제수하고 전지 100 결(結)과 노비(奴婢) 10명을 내려주도록 하라] 하였다.